나는 흔히 말하는 축빠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이동국의 슈팅 한방은 왜소하고 소극적인 나에게 강렬한 한방으로 다가왔고 그 이후 나는 축구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온 국민이 열광했던 2002년 월드컵은 내 학창시절 가장 감동적이며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아있게 되었고 인상적인 월드컵에 따라 박지성이 만들어 간 위대한 커리어와 함께 나는 유럽축구에 빠지게 되었다.
나의 군생활은 평범했지만 일과시간 이후는 항상 연등이었고 박지성과 함께 군생활 2년을 버티고 나올 수 있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해외축구 위주로 경기를 시청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직장생활, 결혼, 출산, 육아라는 과정을 거치니 시차가 다른 먼 외국의 축구경기는 이제 더 이상 열정을 쏟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자연스럽게 다시 빠진 축구가 바로 K리그, 그 중 내 고향 대전을 연고지로 한 대전하나시티즌은 이제 나의 최애 팀이다. 흔히 대전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성심당과 한화이글스라고 하지만 나는 사실 한화이글스는 대전을 상징하는 팀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 이유는 팀 명에 지역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역연고와 상생을 주장하는 스포츠라면 그 지역명칭이 팀명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FC'바르셀로나', '뉴욕' 양키스, 'LA'다져스 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희한하게 한국 야구는 가장 지역적인 색채를 띄면서도 지역명이 팀명에 들어가 있지 않다. 야구는 원래 그렇다고 하는데 나는 그 원래라는 말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일본도 프로야구가 있는 몇 안되는 국가인데, 꽤 많은 구단이 지역명을 팀명에 넣고 있음에도 유독 한국야구는 지역명이 없으니 그것도 참 묘한 일이다.
물론 야구를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나 또한 어린시절, 지금의 한화이글스가 빙그레이글스 이던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야구경기를 관람하러 다녔고 이는 여전히 어린시절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다만, 나는 한화이글스가 대전팀이라는 생각보다는 한화라는 기업의 팀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에 한화와 관계없는 내가 굳이 이 팀을 응원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나는 시민의 구단, 우리 지역의 구단이라는 이유 하나가 참 좋았다. 내가 응원하는 대전하나시티즌도 원래 시민구단이었다. 그냥 시민구단이 아니라 FA컵을 우승했던 단 한시즌을 제외하면 가장 돈이 없고, 가장 정치권에 이용을 잘 당하고, 비리의 온상, 코칭스태프가 구속되고 레전드를 소모품 처럼 여기는, 그 어떤 낭만도 없는 구단이었다. 승격 후 재강등 시절을 보며 이 팀에 미래가 있을까 고민했던 시절도 있을 정도다.
결국 나는 다시 돌고 돌아 K리그의 대전하나시티즌을 응원하고 있다. 창단시기 부터 이 팀의 경기를 보긴 했지만 봉사활동 시간을 위한 목적이 강했고 철이 들어 경기를 보기 시작했을 땐 매번 고통의 시간이었는데 오랜 애증의 세월을 지나 지금은 기업구단으로 변모하며 승격도 이루고 좋은 선수를 사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현재 우리 팀은 위기다. 리그 11위 강등권에 위치해 있고 좋은 성적을 거두다가 한차례 주춤한 상황이다. 매번 경기를 볼 때마다 수명이 줄어드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한 선수들의 투지와 열정을 볼 때마다 나 또한 최선을 다해 응원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A매치 기간과 겹쳐 주중, 주말 경기가 없는 기간은 삶이 참 무료해지는 느낌이다.
그러던 와중 하나은행 자선축구대회의 일환으로 팀 임영웅 VS 팀 기성용의 경기가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나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축구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사실 임영웅을 보러간 건 아니다. 임영웅은 나이드신 분들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 출신이고 내가 즐겨듣는 노래 스타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경기장에 방문한 이유는 늘 그렇듯 그곳에 축구가 있었고 한때 내가 정말로 좋아하던 미드필더 기성용 선수의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함이었다.
나는 축구를 매우 오래 관전했지만 희한하게도 기성용이 직접 뛰는 것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우리팀은 매우 오랜기간 2부리그에 머물러 있었고 기성용은 계속 해외에서 뛰고 있었다. 대전이 1부로 올라온 이후에도 기성용의 부상 등으로 기성용이 직접 뛰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기성용 선수의 플레이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만큼 직관할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는 재밌었다. 어차피 강등 외다리 혈투의 긴박한 경기도 아니었고 골도 많이 터지고 일종의 K리그 올스타 + 인플루언서 연합팀의 대결 같은 느낌이었기에 나 또한 충분히 즐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갔으니까. 물론 가장 압권이었던 점은 하프타임 공연이었다. 흡사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모습에 이게 임영웅이 가진 티켓파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영웅이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지난 FC서울과 대구의 K리그 경기 때 축구화를 신고 하프타임 공연을 했던 적이 있고 이는 꽤 화제가 된 일이다.
심지어 이번 경기 임영웅의 어시스트를 보았는데 이는 절대 우연히 나온게 아닌 계산에 의한 플레이로 보였고 본업이 가수인것을 고려하면 임영웅 본인의 축구실력도 상당하다고 느꼈다.
이번 경기엔 3만 5천명이 입장했는데 서포터즈나 기존 대전팬 없이 순수 영웅시대 회원들로만든 티켓파워인것을 감안하면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그 이후 대구경기에 임영웅 팬분들이 지속적인 관람을 하여 대구 관중이 늘어났다는 것을 보았는데 혹시 이번 임영웅 선수의 방문으로 대전 월드컵 경기장도 활기를 띌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물론 경기 만족도와는 별개로 잔디관리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라도 이날 잔디 때문에 임영웅이 부상당했다면 엄청나게 아찔한 상황이 펼쳐졌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간만에 아무 생각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축구를 보고 왔더니 기분이 좋았다. A매치가 끝나고 우리팀의 위기는 계속되겠지만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즐길 수 있는 경기를 종종 보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이 임영웅의 기운을 받아 강등권을 탈출하길 바래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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