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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생존기

극 보수적인 기업에서 스타트업의 팀장까지 -1-

by 슈팀장 202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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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첫 직장생활은 극도로 보수적인 공공기관이었습니다. 공공운수 분야였는데 이게 또 민간업자가 운영하다보니 사기업의 안좋은 점과 공공기관의 안좋은 점을 다 갖추고 있는 회사였습니다.

(때문에 저는 사실 어떤 공공기관이 민영화를 한다고 하면 걱정과 반대가 앞서게 됩니다.)

 

당시 회사 소속 정직원은 대략 60여명, 하도급 인원은 200여명이 넘는 기형적인 구조의 회사였습니다. 물론 제가 입사전에 그런 사실을 알수는 없었고 저는 다만 주거지 근처에서 가장 크고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아는 기업이었기 때문에 입사지원했고 입사지원 당시 가군의 행정직, 나군의 기술직에서 행정직을 골랐을 뿐이었습니다.

이곳은 잠시 거쳐가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대졸공채가 막바지에 다다르던 시기였고 가고 싶었던 금융권회사의 3차, 최종면접에서 보기좋게 탈락하면서 어디라도 취업한 뒤 다시 목표기업들의 상반기 공채를 노리고자 했기에 첫 직장에 행정직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행정직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정확하게 어떤 행정직인지는 몰랐는데 입사하고 보니 저에게는 '인사행정' 담당자라는 명함이 부여되었습니다.(사실 저는 영업마케팅 꿈나무였습니다!!)

 

사회초년생인 저는 당연히 회사생활을 하며 다시 취업준비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큰 오판이었고 제 근성이 생각보다 나약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어시험 점수는 왜이리 빨리 만료가 되는것인지, 왜 인적성 시험은 3개월만 손에서 놓아도 문제풀이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는지, 왜 유독 내가 취업준비만 하면 준비하던 기업들이 상반기 공채를 포기하는지... 모든 것이 저에게 가혹한 환경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실제 상반기 입사지원이 더 어렵고 서류합격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다소 시간이 흐른 뒤였다!

 

그렇게 상반기 공채에서 쓴맛을 보고 하반기가 되니 유독 회사일이 바빠지게 되었고 한참 취업준비생 시절 제출하던 이력서의 1/3도 제출하지 못하고 하반기 공채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마저 모든 서류전형에서 광탈한것은 덤이었구요. 사실 저는 졸업하기 전에 서류전형 합격률이 17%정도였기 때문에 30군데를 지원해도 합격하는 곳이 2~5개 정도는 생길것이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던 셈입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차가 되니 인사팀이라는 백오피스 막내로서 행정업무를 하는게 익숙해진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취업경쟁률은 점점 심해지고 결국 기존 직장의 경력을 살려 경력있는 신입으로 입사지원을 해야 했는데 2년은 경력인정 받기가 애매했습니다. 결국 3년 이상을 채우고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당시엔 제가 첫 직장에서 7년차 인사담당자가 될 때까지 근무할줄은 상상도 못했었죠.

 

저 또한 극한으로 보수적이었던 첫 직장에서 그렇게 오래 버틸것이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당시 저는 회사에서 거의 막내급 사원이었고(당시 평균적인 직원분들 근속이 15~20년이었으니 7년차는 막내가 맞습니다.) 사고방식이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고 자기 주장이 강했는데 이게 현재 흔히 말하는 MZ의 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에 반해 당시 첫 직장은 대표이사를 필두로 각 조직장이 전부 군출신인 그야말로 군대의 축소판 같은 회사였습니다. 예를 들어 인사팀장님은 인사장교 출신, 건축부장님은 공병장교 출신이 조직장으로 배치되어 군대식 행정과 업무처리의 끝판왕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덕분에 천둥벌거숭이 같던 저는 조직내에서 천덕꾸러기, 특이한 사고 방식으로 튀는 존재로 각인되었고 정말 엄청나게 혼나며 업무를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답답했던 점은 회사의 모든 양식이 군대와 같았고 군 출신이 많아 PPT, 워드, 엑셀과 같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한글로 모든 업무가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 과정을 통해 저는 한글의 마스터가 되긴 했는데 이 효용성에 대해서 깨닫게 된 것은 미래에 스타트업 입사 후 정부지원 및 대관업무 양식을 작성하면서였기에 당시의 저로서는 꽤나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 직장생활은 변화의 폭이 적었고 9 to 6 근무에 각종 수당도 원활하게 나오는 안정적인 직장이었고 다니다 보니 저 또한 안정적인 삶에 만족해서 계속 다니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현실에 만족해서였을까요? 2019년, 대한민국을 뒤짚었던 사건이 터집니다.

 

바로 코로나 사태입니다.

당시 재직중인 회사도 그 타격을 피해가지 못하게 되며 저 또한 인생에 있어 큰 변화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코로나19와 함께 저에게 생긴 변화는 다음 글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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